‘탈원전’과 사회적 합의 여정
정지훈 빅뱅엔젤스 매니징 파트너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대해 471명의 공대 교수들이 반발을 하고 나섰다. 이들은 민생부담 증가,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국부유출, 에너지 안보 위기 등의 이유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추진에 대한 중단을 주장했다. 이 선언에서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각종 수치들은 기존에 다른 집단이 제시한 수치와 크게 달랐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사실 이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진행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의 경우에도 2000년 EEG라고 불리는 신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할 당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독일의 빅4 전력회사들이 기술적으로 봤을 때 독일의 전체 전력사용량에서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할 수 있는 비율은 절대 4%가 넘을 수 없다고까지 예측하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되고 운영된지 15년이 지난 2015년 통계를 보면 독일의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6%가 됐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탈원전 정책 등은 단순이 경제적이고, 수치를 바탕으로 한 결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경제성과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성장중심의 사회에서 안전성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생태환경을 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에 결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은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지상명제처럼 떠받들던 성장과 경제우위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여러공대 교수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이와 관련한 논의를 공론의 장에서 지속해야 할 것이며,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독일이 시작했던 에너지 혁명을 일으킨 신재생에너지법의 내용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신재생에너지를 국민들이 조금 더 비싸게 사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민간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그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생산의 역할을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에서 분산화를 유도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에너지라고 하더라도 그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할 수 있다는 합의를 요구했고, 국민투표까지 진행해가면서 독일국민들은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거대한 변화의 시작은 정부의 의지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 끝맺음은 대통령과 정부의 힘 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이 디지털 기술은 이런 사회적 공론화를 촉진하고 풍부한 토론과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대응한다면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을 오도할 수도 있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도 경제성이 높았던 원전을 버리고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더 비싼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수준의 합의를 위해서는 다른 구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국민투표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록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새로운 가치관을 중심으로 하는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공법을 선택해서 국민들의 확실한 약속을 받고 정책을 실행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현 시점에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설사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 했다는 것 자체를 역사는 높게 평가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탈원전’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성장통이다. 이런 성장통을 잘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