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여덟 가지 질문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1980년대 말에 일본 NEC 연구팀이 소형화 기술을 개발한다. 톰 마틴 부사장은 여기서 기회를 본다. 급히 팀을 꾸려서 노트북 개발에 착수했다. 핵심은 경량화. 기술을 살리려면 무게를 줄여야 한다.
걸림돌이 하나 있다. 3.5인치 하드 드라이브다. 내장하면 무게가 부쩍 늘었다. 내부 저장 공간을 희생하는 대신 하드 드라이브는 외장형으로 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연결하면 될 터였다.
‘울트라라이트’라 이름 붙였다. 초경량이란 점을 강조했다. 개발 목표는 달성됐다. 1.8Kg. 당시로선 혁신 무게였다. 경쟁 제품의 절반 무게였다. 전문가들 호평도 이어진다.
NEC의 기대는 커졌다. 광고에도 아낌이 없었다. 그러나 판매는 저조했다. 문제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외장형 하드 드라이버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에 심각한 실수가 있었을까. 문제는 질문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란 질문이 던져졌을 때 문제는 시작됐다. 혁신을 말할 때도 많은 질문이 있다. 여러 해법도 제시된다. 그 속에서 많은 기업은 길을 잃기도 한다.
스콧 앤서니 이노사이트컨설팅 파트너에게 많은 최고경영자(CEO)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혁신으로부터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는 “혁신을 통해 기업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해 보라”고 말한다. 앤서니는 많은 기업에 세 가지 공통 목표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는 것(Growth), 새로운 혁신을 찾고 위협을 방지하는 것(Disruption),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Value).
여덟 가지 질문에 답해보라고 한다. 첫 번째 ‘소비자가 해소하지 못한 문제는 없는가’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요구를 아는 것이 소비자 역할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기업 몫이다.
두 번째 ‘시장에서 배제된 소비자가 있는가’다. 제품이 너무 비싸거나 사용이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좀 더 단순하게, 사용이 쉽게 적당한 가격으로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는다면 이베이, 구글,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새로운 시장으로 이끈다.
세 번째 ‘별반 쓰지 않는 기능에 매몰돼 있지는 않은가’다.
네 번째는 내 주변에 파괴적 혁신은 없는지 되묻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시장의 혁신에 따라가고 있는가?’다. 다른 기업이 선도하고 있다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 밖에 산업의 오랜 관행이 맞는지, 나만의 차이는 무엇인지, 더 싸고 효과 높은 혁신 방식은 없는지로 여덟 개 질문은 완성된다.
퀘스천위크닷컴은 ‘세상을 바꾼 10가지 질문’을 선정한 적이 있다. 1943년 어느 화창한 겨울이었다. 미국 뉴멕시코 휴향지에서 에드윈 랜드는 딸 제니퍼의 사진을 찍었다. 제니퍼는 보여 달라고 조른다. “왜 지금 당장 볼 수 없죠?” “인화실이 없어서 그래”라는 말은 어린 제니퍼에게 납득되지 않았다.
5년이 지나 제니퍼가 인화란 단어를 알게 될 즈음에 랜드는 답을 보여 준다. 폴라로이드 즉석 카메라는 이렇게 세상에 나온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질문에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호기심, 상식 파괴, 도전 의식, 제니퍼는 궁금했고, 랜드는 딸을 위해 뭐든 하는 ‘딸바보’인 모앙이었다. 혁신을 하는데도 이 금언은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