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기초한 파급적 변혁 절실
세상읽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 일어날 분야
선점·육성에 관한 논의보다 기업들 도전·혁신 통한 자원 효율적 재배치가 핵심
우리 경제가 크게 의존하던 반도체산업이 최근 약화되면서 과연 어떤 부문을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또는 흔히 ‘4차 산업혁명’으로 지칭되는 최근 변화가 주로 어떤 차기 산업과 관련된 것이며 정책적으로 어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산업혁명은 학자에 따라 정의 방식이 다르지만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9세기 아널트 토인비가 이야기한 개념이다. 그는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를 ‘중세적인 규제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의 출현’으로 설명한다. 즉, 산업혁명 시대로 간주되는 당시 영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여러 기술 변화가 있었지만, 기술 변화 자체보다는 이와 연계된 경쟁을 통해 변혁의 확산이 이뤄지며 여기에 기초해 새로운 생산과 분배 양식이 발전했고 이를 하나의 혁명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의 산업화를 중심으로 제1차 산업혁명 과정을 살펴보면 기술혁신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지 직관을 얻을 수 있따. 메사추세츠공과대 경제사 교수 출신으로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아래에서 활약한 월트 위트먼 로스토는 영국의 산업화를 기술 진보를 통해 면직공업(綿織工業)이 발전한 후 다른 산업으로 그 영향이 파급된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즉, 대표적으로 혁신적인 기술 변화가 일어난 산업이 존재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생산성 향상이 다른 산업의 발전을 견인했다는 것이다.
경제사 연구는 천을 짜는 직포(織布) 공정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의 발명이 중요한 기술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본다. 플라잉 셔틀의 활용으로 직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천을 짜는 데 필요한 실의 부족이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을 대량 생산하는 방적(紡績) 기술을 확보하면 상승한 실의 가격과 수요에 기반해 돈을 벌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자 실을 만드는 방적기술의 혁신이 이뤄졌고 새로운 방적긱계들이 등장하며 보다 효율적인 실의 생산이 가능하게 됐따. 이런 과정을 통해 저렴한 실이 대량 공급될 수 있게 되자 다시 더 많은 직포 생산이 가능하도록 기술 발전이 추가로 이뤄진 것이다. 직포와 방적 부문 간에 긍정적인 상호 파급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발전이 있기 전에 영국 면직공업은 오히려 인도에 뒤처져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면직공업 내부에서 이러한 파급효과를 통한 변혁을 이끌어내며 생산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면직공업 자체가 다른 연계 산업과 상호작용하며 영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여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한 분야에서 이뤄진 혁신이 수요와 공급에 기초한 가격과 경쟁을 통해 다른 분야로 파급되며 보다 높은 생산성에 기초한 생산양식을 만들어내는 변혁을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플라잉 셔틀’을 사용하려 할 때 직포 노동자들의 저항도 있었따. 일자리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직공업의 발전 과정에서 산업 전체뿐만 아니라심지어는 직포 부문에서도 더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실의 부족은 가격 상승이라는 신호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라는 신호를 임의로 통제하거나 기업의 이윤 추구를 백안시한다면 그러한 도전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산업 분야에서 일어날 것인지 선험적으로 선정하고 육성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민간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혁신을 통해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경제시스템과 규제환경을 만들어갈지다. 자유로운 경쟁과 가격, 기업의 이윤 추구, 동기에 기반한 혁신과 이에 기초한 파급적 변혁으로 이뤄진 영국 산업혁명의 과정과 성과는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기술 변화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