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 매일경제 필동정담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광주형 일자리

필동정담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19세기 영국 사상가 토머서 칼라일은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풍자했다. 당대 최고 경제학자 리카도나 맬서스가 내놓은 대중의 빈곤, 인구증가와 식량난 같은 이론들은 종말론 수준의 어두운 얘기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학이 우울증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태생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정치학은 내일 거짓으로 들통날망정 오늘 근사한 희망의 말을 던지는 기술이지만, 경제학으니 인간이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게 본업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경제원리도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달갑잖은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신년 초 화두가 된 ‘광주형 일자리’에는 그런 냉정한 현실을 깨우쳐주는 여러함의(含意)가 있다. 무슨 일제리에 광주형 따로 있고 부산형, 인천형이 따로 있을까. 새로운 고용창출 모델의 선구가 되겠다는 광주의 도전정신을 평가하기 이전에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속칭 ‘반값 일자리’라도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먼저 와닿는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가 앞장서 고안하고 문재인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한 노-사-민-정 대타협 모델이다.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5000을 벤치마킹 했다고 하지만 임금수준이나 복지 형태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실험적 도전이다. 계획대로 추진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기대를 거는 이유는 과거와 좀 달라진 정부의 현실 인식 때문이다. 광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평균의 70%에 불과하고 20·30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상황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자각이 담겨 있다. 정의와 선의로 포장된 장밋빛 구해 대신 당정청이 함께 나서 대국민 설득작업을 펴는 접근법도 많이 현실화됐다.
문제는 협상 타결이다. 협상을 가로막는 마지막 걸림돌은 역시 민노총이다. 고용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혼자만 에덴동산에 살아가려는 선민들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좋게 말해 차선책이고, 엄밀히 말하면 고육지책이다. 지역주민들의 불이익과 희생을 기반으로 짜낸 사회적 대타협 모델에 귀족노조가 완장을 두르고 간섭할 권한은 없다. 속히 타결 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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