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요즘 IT 업계의 화두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입니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모바일 우선에서 AI 우선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AI는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전문가 영역의 일을 일반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글이 생태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을 일상화, 대중화, 민주화라는 용어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Everywher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구글은 Intelligence Everywhere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이 무용지물인 트라우마 현장을 많이 겪으면서 이제는 심리 치유에도 Everywhere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닌 적정한 심리학이 그것입니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저 | 해냄 | 2018년 10월 10일

 

저자인 정혜신은 ’적정기술’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내리꽂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박한 집밥같은 치유를 ‘적정심리학’이라고 하였습니다. 영감을 준 사람은 남편인 것 같습니다. 책표지에 ‘영감자 이명수’라고 되어 있으며, 책 서문보다 앞서  정신과 의사인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적정심리학이 바로 심리 치유의 일상화, 대중화, 민주화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삶의 고통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의학적 관점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속마음을 보듬고 건강한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질병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 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24쪽

저자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만2천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고 합니다. 성공한 이들의 속마음을 나누는 일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라우마 현장에서도 피해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치유법’이 시급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비상 상황이지만 내용을 미리 잘 알아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내 일상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할 수 있다.81쪽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라고 묻는 것이 먼저라고 합니다. 응급상황에서 발생하는 심폐소생술처럼 일상의 순간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심리적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고통을 알게 된 순간 전문가를 검색하기 전 엄마가 할 일은 아이에게 먼저 묻는 것이다.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심장 질환이니 유전 질환 문제가 아니고 내 아이의 마음에 관한 문제다. 아이의 존재에 눈을 맞추고 주목하면 된다.74쪽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107쪽

적정심리학은 현장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람을 살린 결정적 무기인 ’공감과 경계’를 기본으로 합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마음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존재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공감과 집중을 받지 못하면 우울해 집니다. 진정으로 공감받고 공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상대의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100쪽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단순히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실질적인 치유가 가능한 공감의 차이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말을 합니다. 환자가 아닌 같은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121쪽

공감은 심리적 심폐소생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생폐소생술을 통해 치유된 많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의 상처에 대해 치유한 세심한 예들이 있습니다. 가족, 상사, 주변 사람과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적정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그렇구나’로 대변되는 호응이 아닌 진정한 공감의 행동 지침서가 됩니다.

공감을 위해 자신에 집중하고, 제대로 된 칭찬을 하고, 감정에 집중하기가 필요합니다. 마음은 언제나 옳다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감정(마음)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공감은 억누른 상처를 치유하는 메스이자 연고인 것입니다.

공감은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264쪽

우리나라 3명 중 1명은 우울증상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단순한 1위가 아니라 2위의 두배가 넘는, 독보적 1위 입니다. 가정에선 부모의 시선과 기대에 의한 삶을 살아가며, 갑질하는 조직에서는 참기만 하고, 사회의 기준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찾기가 힘듭니다. 이 책을 읽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이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통해 공감의 올바른 사용법과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이 말 부터가 공감의 시작입니다.

 

  • 비상 상황이지만 내용을 미리 잘 알아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내 일상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할 수 있다.(81쪽)
  • 분노를 말할 수 있으면 분노로 폭발하지 않는다. 분노에 매몰된 그녀가 순간적으로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분노가 전적으로 이해받고 수용됐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녀 자신의 감정이 판단받지 않았기 때문이다.(166쪽)
  •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하려면 사람은 동시에 자신에게도 무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타인을 도울 자격이 없는 사람의 비겁한 행위도 아니다. 자기 보호를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를 도울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191쪽)
  • “그래도 계속 만나야 하는 사이인데 그런 상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다면 다시 말할 것이다. 질문이 잘못됐다. 상사를 상수로 놓고 나만 변수로 취급하는 불평등한 인식의 구조 안에서 내가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상사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질문으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내 삶이기 때문이다.(203쪽)
  •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은 나이가 들면서 부모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친구나 이성 친구에서 배우자와 상사로 옮겨간다. 더 늙으면 자식이나 후배에게 사랑받길 원하기도 한다. 대상은 나이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욕구 자체는 변치 않는다. 결핍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조건과 상황 때문에 욕구는 더 절박하고 강렬해진다.(223쪽)
  • 전문가들뿐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그래서 배우자나 가족에겐 너그럽기가 더 어렵다.(226쪽)
  • 공감을 받지 못하고 넘어간 상처는 일방적 계몽과 충고의 형태로 상대방의 마음에 칼로 꽂히기 쉽다.(238쪽)
  • 역할에 충실한 관계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이다. 역할 놀이 중인 삶이다. 이런 삶, 이런 관계 속에서 상대가 누군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내 심리적 S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한 번도 그의 속살을 본 적이 없는 삶이다. 평생을 살아도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삶이다.(247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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