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할 일을 어제 하라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s the crown”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희곡 작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왕권의 정당성 유지에만 관심이 있던 ‘헨리 4세’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고 번역됩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해당 대사는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입니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지니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이 계속 성장하고, 일등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확고한 경영이념의 수립 및 실행, 둘째,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혜안, 셋째, 혁신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당장의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지만, 수십 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전략까지 두루 갖추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영이념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후계자를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 일등을 넘볼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의 원리 원칙은 국경이나 업종, 시대를 초월합니다.
과거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동네 철공소에서 시작하여, 현재 모든 자동차의 안전을 책임지는 회사가 있습니다. 70년 동안 성장한 이 회사는 어떻게 그 무게를 견뎌왔을까요?
동네 철공소, 벤츠에 납품하다 자동차 부품 기업 센트랄의 70년 성장 스토리
김태훈 저 | 청아출판사 | 2021년 08월 20일
이 책은 자동차 부품 기업 ‘센트랄’의 70년 성장 스토리를 기록한 책입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센트럴로 소개됩니다. 센트랄은 수익 구조 다변화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자동차 부품 업계에 한 획을 그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입니다. 한일합작회사 추진, 자동차 부품 국산화, 국내 부품의 해외 수출 등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함께 한 기업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자동차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70여년의 시대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의미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산과 창원의 지역사가 나오는 부분은 ‘그땐 그랬지’ 라며 잠시 회상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삼성그룹과 CJ그룹 그리고 신세계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1953년 서면을 가로지르는 동천 변에서 문을 열었다. LG그룹의 뿌리인 락희화학공업사는 1947년 대신동에서 창업했지만 1959년 서면 북쪽 초읍에 공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원형 동아화성공업은 1959년 서면 북서쪽 부암동에서, 태광그룹의 모체 태광산업은 1950년 서면 서쪽 가야동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수건을 책임졌던 송월타월, 섬유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남모직과 한일합섬도 모두 서면 출신이다. 이처럼 활기찼던 서면한복판에서 신라상회도 무럭무럭 자라났다.55쪽
기업 경영은 한 두가지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두가지 잘한 것으로 왕관을 쓴다면 왕관의 무게만 견디다가 오랫동안 왕관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오랫동안 쓰지 못한 이유를 그 만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만으로 탓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관을 가볍게 하는 무엇이 필요합니다. 미래를 위한 결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센트랄은 대상(大商)을 벗어나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는 결심으로 그 무게를 벗어납니다.
자본금 70%라는 부담을 떠안은 강이준 사장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1952년에 탄생해 사업가 강이준을 있게 해 준 신라상회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신라상회는 강이준 사장이 자동차 업계의 최신 정보를 수집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면 시대에는 대상으로 성장하며 신라철공소와 신신제작소를 설립하는 데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볼 조인트를 미래 핵심 아이템으로 선택하게 된 것도 신라상회를 경영하면서 습득한 정보와 통찰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일 합작을 성사시키려면 자본이 필요했고, 신라상회를 정리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큰돈을 융통할 방법이 없었다. 너무 아까운 사업이었지만, 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해 강이준 사장은 신라상회를 떠나보내기로 했다.107쪽
뻔히 보이는 시장에 안주하기 보다는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은 책 곳곳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로 센트랄은 국내 완성차 시장의 성장 발판과 가속화를 제공하였습니다.
센트랄과 센트랄의 협력사들은 1975년 미리 합리화 작업을 시작한 덕분에 급증하는 자동차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시간을 조금 더 더듬어 올라가면, 1972년 기획실을 신설하고 1973년 센트랄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기업 차원의 준비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센트랄은 1977년 새 공장도 신축했다. 강이준 사장의 반 발짝 앞선 기획과 강태룡 과장의 현장 중심 대응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센트랄은 급성장하는 한국 자동차 시장과 호흡을 맞추며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다.151쪽
또 하나는 품질 향상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파는 것이 가장 훌륭한 영업이라는 것을 사내에 확산시킵니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시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오늘날 센트랄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일 것 입니다.
강태룡 사장부터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꼼꼼히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름을 며칠 만에 바꿔야 하는지, 윤활유는 얼마나 자주 분사해야 하는지, 펌프는 몇 시간마다 청소해야 하는지, 펌프가 공급하는 수량은 얼마 정도가 적당한지 등등 장비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들이 미세하게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숱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밝혀낼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작업자 잘못이라고 단정했을 상황들을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320쪽
1996년 미국 기업 델코레미(Delco Remy)의 모터 샤프트 물량 수주 시절에 했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 방법은 현재,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 팩토리 표준 모델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3년에 처음 채택한 ‘한마음’이란 단어가 매년 가을에 펼쳐지는 전사적 체육 활동인 ‘한마음 대행진’으로, 당시 계간이었던 <센트랄> 사보가 2012년 4월 <센트랄 뉴스>(격월간)로 창간되었던 것 처럼. 스마트팩토리도 그때 활동의 오마주로 보입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특급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만 보면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성장세가 빨라진다는 것은 기업을 쉼 없이 뛰게 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에게 반드시 변곡점은 찾아오게 됩니다.
센트랄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생태계의 꼭대기에 굳이 올라서지 않아도, 동급자나 약자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존은 물론 동반 성장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센트랄이 보여 준다. 전통 제조업의 생태계에서 가능했다면, 다른 생태계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센트랄 사례가 최고라든지 최선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든든한 사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먼 길을 떠날 때 동행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큼 크다. 누구나 저질렀을 법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오늘의 자리에 이른 센트랄의 이야기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앞으로도 걸어야 할 여러분에게 적지 않은 격려가 되리라 믿는다.427쪽
센트랄은 이제 두 번의 티핑포인트를 넘어 새로운 변곡점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센트랄의 7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리더의 자격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디지털로 모든 비즈니스가 융합되고 연결되는 요즘 시대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잘나가는 기업의 성장 배경에 있는 경영의 원칙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