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숨은 경제원리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연말연시는 최대 쇼핑 시즌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분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하기 때문이다. 선물(膳物)의 선(膳)자는 ‘제사를 위한 고기’를 뜻한다고 한다. 제사 때에는 가장 신선한 고기를 사용했는데 이처럼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고기를 제사 이후에는 이웃, 친척,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어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선물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선물하는 사람은 선물을 받은 이가 크게 만족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실현하는 데 선물은 그리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다. 상대방이 직접 고르는 물건만큼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조엘 왈드포겔은 미국 예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금전적가치로 환산했을 때 얼마나 만족을 느끼는지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생은 해당 선물의 시장가치보다 10~33% 정도의 사중손실(死重損失·deadweight loss)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누군가에게 1만원짜리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로 인해 누리는 효용이 6700~9000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선물이란 방식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신호 보내기’ 효과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현금을 주는 것보다 선물하는 게 훨씬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선물할 경우 선물을 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물 받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과 애정이 있는지를 선물의 내용과 성격을 통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지만 꼭 필요한 물건을 사온 남자친구 혹은 스쳐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을 기억하고 해당 물건을 선물한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런 연인에게는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이한 점은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은 ‘현금’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부모님에게는 굳이 ‘신호 보내기’효과를 가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미 정서적으로 서로 간의 마음이 명확히 확인된 가족이다. 부모님께는 가장 필요한 물건을 전달해 그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을 두면 된다. 이때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현금’이다.
선물에는 이처럼 서로 간의 마음을 확인하는 합리적인 기제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인류는 오랜 기간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을 이어온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