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보다 학종 개선이 먼저다
심윤희 논설위원
90학번인 나는 소위 학력고사 세대다. 극심했던 눈치작전 해결을 위해 ‘선지원 후시험’제도가 도입됐던 때라 대학과 학과를 지원한 후 그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치렀다. 다음날 면접도 봤다. 그래도 지금처럼 학부모들이 입시설명회에 다녀야 할 만큼 전형이 복잡하진 않았다. 나름 변별력도 있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입시제도 변천사가 도마에 오를 때면 모두가 그 변화의 급진성에 비분강개한다. 가장 거품을 무는 이들은 81학번이다. 한참본고사 공부 중이던 고3 여름방학 때 본고사 폐지라는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두환정부가 고액과외의 원흉인 본고사를 없애는 바람에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지원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서울대에 미달사태가 터졌고, 340만점에 180점을 맞은 배짱 지원 수험생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는 코미디가 연출됐다.
수능 1세대인 94학번도 입시무용담과 관련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들이다. 유일하게 수능을 두 번 본데다 부활된 본고사까지 치른 그야말로 ‘마루타 세대’다 ‘수능등급제’ 적용을 받은 08학번들은 어떤가. 노무현정부가 경쟁 완화를 내걸고 수능 결과를 점수가 아닌 등급으로만 표시하도록 했는데 변별력 문제로 피해자가 속출했다. 결국 1년 만에 폐지됐다.
입시 정책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마다 이전의 폐단을 없애고 최고의 입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선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악도 많았고, 졸속 입시정책으로 인한 희생양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교육부가 들고나온 ‘수능 절대평가 확대’ 파장도 만만치 않다. 당장 2021년 시험을 치르른 중3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표준점수, 백분위 등 간신히 익힌 입시상식은 다 잊고 내신과 스펙 관리에 매달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우성이다. 교육부는 절대평가라는 방향이 정해졌으니 4과목(1안)에만 적용할지, 7개 전 과목(2안)으로 활대할지 공청회에서 의견을 수렴하라는 식이다. 1안 채택시 상대평가 과목인 국어, 수학, 탐구로의 사교육 풍선효과가, 2안 채택 시 변별력 상실이 문제다. 게다가 1, 2안 모두 학습부담 감소, 경쟁 완화, 사교육 절감, 문·이과 통합이라는 수능 개편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통합 사회·통합과학 도입으로 학습량은 되레 늘었고 내신 경쟁은 더 치열해지게 됐다. 수능 사교육은 내신과 비교과로 옮겨가게 생겼다. 문·이과 수학을 아예 분리해 창의융합형 인재양성도 빈말이 돼 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변별력 약화다. 수능은 대입 선발 지표이고 입시는 줄을 세우는 것이 필요적이다. 절대평가는 90점 이상인 1등급이 5%도나올 수 있고 30%도 나올 수 있다. 동점자가 무더기로 나온다면 과연 대학은 무엇으로 학생을 뽑겠는가. 대학들은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보다는 수시를 선호하게 될 테고 면접, 대학별고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결국 수시 대표주자인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학종은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우 50%가 넘고 서울대는 80%에 육박하지만 공정성·투명성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학생부 조작사권이 여러 번 터진데다 부모 경제력에 따른 스펙 격차, 높은 사교육 의존도, 상위권 몰아주기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아들 문제도 학종의 허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렇게 학종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이를 뜯어고치지 않고 수능 절대평가부터 밀어붙이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 고교의 학생부 관리능력이나 대학의 평가 역량은 아직 학종을 제대로 소화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다. 학종의 문제점은 고교 3년 내내 내신, 수능, 비교과,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슈퍼맨 만들기’전형이라는 것이다. 내신·수능·논술 세 마리 토끼를 잡야 했던 2008년보다 더하다. 한번 삐끗하면 목표와 멀어지게 되다 보니 내신 전쟁으로 교실이 살벌해 질 수 있다. 패자부활이 불가능하는 것도 맹점이다. 아이들은 수차례 방황도 하는데 고교 때 학생부를 망치면 뒤늦게 정신을 차려도 기회가 희박하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한다고 저절로 공교육 정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 시행 전에 학종 등 그 이외 대입전형의 신뢰 확보가 우선이다. 부작용을 체크하지 못했던 역대 정부의 입시 실험이 가져왔던 대혼란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