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결국 흩어질 수밖에 없다.
김기철 정치부 차장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노정민 씨와 전승현 씨는 지난 겨울 주말마다 함께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사당동 호프집에서 축하파티도 함께했다. 카톡 메시지로 문재인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등을 주고받으며 “우리 끝까지 문 대통령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는 최근 들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갈라진 지점은 교육 문제였다. 중3 딸아이를 둔 정민 씨는 “문대통령이 공약대로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한다면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고, 교사인 승현 씨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학교 동창인 박준형 씨와 윤선영 씨도 ‘촛불 동지’였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말싸움을 크게 했다. 서울에 약 99㎡(30평) 형대 아파트를 마련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던 선영 씨는 “이제는 그런 꿈도 못 꾸게 만든다”고 화를 냈고, 수도권 위성도시에 사는 준형 씨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면 집값이 안정돼서 결국은 서민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맞섰다.
지난 대선에서 서로 투표 인증샷을 보내며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뜻을 모았던 김현석 씨와 박지웅 씨도 지금은 문 대통령 지지의 온도차가 크다. 의사인 현석씨는 문재인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폭과 속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지웅 씨는 더 확실하게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은 ‘이게 나라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사람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다. 취임 100일이 지났지만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문 대통령이 촛불의 질문에 비교적 충실한 대답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로 정의한다. 문 대통령이 20일 ‘대국민 보고회’에서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촛불이 군집으로서 의미와 힘을 가지려면 ‘공동의 폭표’와 ‘공동의 적’이 있어야만 한다.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공동의 목표’로 삼고자 하지만 그런 공동전선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광장을 벗어나 각자의 생활 공간 속으로 들어간 촛불들은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고 다른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다른 모든 요구들을 ‘광장에서’ ‘촛불의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점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으로 방폐장 문제,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 문제를 처리해야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촛불이 어쩌면 신기루일 수도 있음을 명심하고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