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고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벨 피유(belles filles). ‘아름다운 딸들’이란 뜻의 프랑스어다. 포병장교 출신답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이렇게 부른 것은 대포다. 그리보발12파운드 포는 혁신 무기였다. 가볍지만 강력했다. 나사식 높이 조절 장치에 조준용 눈금자까지 있다. 나폴레옹은 이것을 멀찍이 후방에 두는 것보다 최전방에 정렬시키길 좋아했다. 근거리 사격 후 초토화된 전장에 보병을 내보내 승패를 가름 짓곤 했다.
‘경영론(The Theory of Business)’이란 기고문에서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왜 기업은 위기에 빠질까.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린 그에게도 고민거리 질문이었다.
사례를 살폈다. 개인용컴퓨터(PC)가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메인프레임 강자 IBM이었다. 5150 모델은 곧 산업 표준이 된다. 1984년에 인수한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와 최초의 내비게이션 시스템 온스타를 만들어 냈다. 무능력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문제일까. 드러커 교수는 단지 그것이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오랜 믿음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바른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사회, 시장, 고객, 기술 구조에 관한 가설이다. 이것들이 현실과 괴리될 때 위기는 필연이 된다.
GM에도 한결같은 가설이 있었다. 시장은 소득에 따라 몇 개 세그먼트로 나뉜다. 여기 맞춰 조금씩 모양 바꾼 모델을 출시하면 된다. 76년 동안 정상을 지켰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이 선택 기준으로 되면서 허물어져 내린다. IBM의 컴퓨터란 하드웨어(HW)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핵심은 소프트웨어(SW)가 돼 있었다.
세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첫째는 버리는 것이다. 3년에 한 번 모든 가설에 스스로 묻고 답하라. 가정이 맞는지, 아직 효과적인지. 그렇지 않다면 버릴 때가 됐다. 둘째는 자신의 고객이 아닌 다른 곳에 물어보라는 것이다. 캐나다의 대형 소매점 시어스는 안락한 쇼핑이 최고라도 들었다. 베이비붐 세대 맞벌이 부부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셋째는 시장변화의 시그널을 찾아내라. 갑작스런 판매 부진은 심근경색의 징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1994년 첫 3개월 동안 크라이슬러가 14만대의 비니밴을 팔아치우자 업계는 경악했다. 미니밴 붐은 이렇게 시작된다.
결국 환경은 변한다. 뉴욕타임스는 1984년에 “디트로이트가 창조한 멋진 것”이라 한 미니밴을 2016에 “유행 지난 물건”으로 꼽았다. 드러커 교수의 조언도 이것이다. 모든 것이 좋을 때 선택은 옳다는 믿음으로 바뀐다. 시간이 지나면 문화로 굳어진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성공 열쇠라고 여긴다. 그러나 정작 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은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고, 미션과 핵심 역량을 다시 맞춰서 전사 차원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날도 여느 때 같으리라 상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남동부에 위치한 워털루의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진흙탕 속에서는 포병을 맘껏 전개할 수가 없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땅에 떨어진 포탄은 진흙에 파묻힐 게 빤했다.
“모든 기업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있는 가설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 정작 어려운 질문은 시작됩니다.” 경영론의 한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