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이야기 할 때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정사는 국가가 직접 관여하여 만든 기록물입니다. 국가적인 역량이 동원되었기에 정확도가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진 정사와는 달리 당대의 지식인이 개인적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도 있습니다. 이를 야사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기록인 만큼 정확도는 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과거에 기록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일화들을 모두 야사로 보면 안됩니다. 야사 중에는 그런 기담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야사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황희는 야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이른바 야사란 것은 (국가에 소속된) 사관이 기록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뜻있는 선비가 산야에 있으면서 들은 바를 측면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세종실록> 세종 13년 11월 5일
정과 야는 국가와 개인의 대비를 이루는 단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가짜를 나누는 명칭이 아니라고 하네요. 혹자는 ‘야사만이 진실이다.’라고도 합니다. 이렇듯 정사와 야사는 모두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발명가와 발명품에 대한 정사와 야사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김명진 저 | 궁리출판 | 2019년 11월 19일
과학기술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 같습니다. 통신병들이 무선통신을 하기 위해 등에 지고 다니던 워키토키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5G 휴대폰으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지구 어느 곳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래는 웨어러블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지금과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야기 할 때 기술의 발전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기술을 보면 오늘과 내일의 기술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의 과거에 대한 이해는 첨단기술의 숲에서 길을 읽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한때 새 기술이었던 낡은 기술에 예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고 그것이 몰고 온 기회와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갔는지 살펴본다면, 오늘날 기술과 관련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5쪽
‘낡은 기술’ 역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최신의 첨단기술’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전의 기술과 1차, 2차 산업혁명 시대에 해당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인쇄술, 증기기관, 철도, 전신과 전화 등입니다. 해당 기술을 통해 일어난 사건(인쇄술 혁명, 산업혁명, 운송혁명)을 다루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학자(제임스 와트,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도 등장시킵니다. 기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여러 주제를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기술사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김명진 입니다. 전공이 과학기술사 입니다. 많은 과학관련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20세기 기술의 문화사⟫로 제37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최우수저술상을 받았습니다.
저자의 경력이 보여주듯이 이 책은 쉽게 읽힙니다. 특히, 과학기술사에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위인전에서만 봐왔던 내용 외에 많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어 야사를 읽듯 책 속에 빠져듭니다.
와트의 혁신에는 공(功)과 과(過)의 측면이 모두 있다. 1770년대에 볼턴과 와트는 새로운 특허에 입각한 발명을 사회에 안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혁신가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독점권을 지키려는 기술적 보수주의자로 탈바꿈했다. 두 사람은 증기기관 개량에 대한 발명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도입을 막으려 애썼고, 고압 증기기관이나 이를 이용한 철도같은 새로운 혁신들은 와트의 특허가 만료된 후에야 실용화될 수 있었다. 81쪽
전기조명 사업에서 에디슨의 활동은 우리가 흔히 ‘발명가’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전형적 이미지를 훨씬 뛰어 넘는다. 에디슨이 전구의 ‘최초’ 발명가가 아니었음에도 오늘날까지 전구의 발명가로 인정받은 것은 관련된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문제 모두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냄으로써 ‘전기 시스템’을 사회에 도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발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영감에 따라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171쪽
과학기술의 발전이 꼭 모든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읽어가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철도의 물리적 단절과 다양한 궤간으로 인해 장거리를 이동하는 승객이나 화물은 도중에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가령 1861년에 남부 도시 찰스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기차로 여행하는 승객은 도중에 여덟 번 기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철도 회사마다 제각각인 궤간이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호환성(incompatibility)의 결과를 오히려 반긴 사람들도 있었다. 시내에서 짐을 옮겨 싣거나 승객들이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잦았고, 환승 기간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숙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지역의 짐마차꾼, 짐꾼, 여관 주인들은 오히려 번창했고 큰 이득을 보았다. 이들은 나중에 철도의 통합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해집단을 형성하기도 했다.103쪽
기술의 발전은 노동에도 변화를 가져옵니다. 테일러 주의는 인간을 ‘시스템’의 일부로 만듭니다. 포드주의는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 인간의 노동을 단순화 시킵니다. 포드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포스트포드주의도 등장합니다. 도요타 생산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노동의 인간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1992년 포드사의 엔지니어들은 포드 공장에서의 업무를 분석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 공장에는 7,882가지의 작업이 있었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분류한 결과, 그중 670가지는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할 수 있었고, 2,637가지는 다리가 하나뿐인 사람도 할 수 있었으며, 2가지는 팔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었고, 715가지는 팔이 하나인 사람이, 10가지는 맹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7,832가지의 작업 중 4,034가지는 모든 신체 능력을 다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239쪽
책은 기술, 사건, 인물들을 등장시켜 각각의 일화들을 통해 교훈을 이야기합니다. 기술은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기술은 동시대 사회 속에서 일어나며 그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 활동입니다. 아울러 어떤 위인 발명가, 기술자, 엔지니어도 진정으로 ‘시대를 뛰어넘을’수는 없으며, 중요한 의미에서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통찰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발명/혁신 활동애 대한 관념적 상에서 벗어나 더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1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나라(조선)는 영조, 정조, 순조의 3대가 통치하던 시기 입니다. 영조 36년에 <일성록>의 기록이 시작됩니다. 일성록은 일기를 즉위 후 국왕의 언행과 정사를 기록한 공식문서로 격상을 시킨 것입니다. 기록이 있어야 당 시대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자료를 통해 확인한 과학기술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한 이 책, 과학기술사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시각 자료는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