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계산법과 大國의 자격
김기철 정치부
‘원자바오 계산법’이란 말이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가 국제협상에서 활용했다고 해서 자리 잡은 용어다. 원자바오 계산법의 기본 개념은 ‘매우 작은 문제도 13억(중국 인구)으로 곱하면 곧바로 큰 문제가 되고 아주 큰 숫자도 13억으로 나누면 보잘것 없는 것이 된다’에서 출발한다.
원자바오 계산법을 중국의 현재 경제 상황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중국은 2016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11조3916억달러로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이를 인구수로 나눈 1인당 GDP는 8280달러로 아프리카 가봉보다 겨우 한 계단 높은 세계 70위 수준이다.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과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원자바오 계산법은 원 전 총리의 ‘거안사위(居安思危·편안할 때 위험을 생각한다)’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 경제가 잘나갈 때 미리 닥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은 실제로는 이 계산법을 대외관계에서 주로 중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해왔다. 국제사회에서 대국으로서 권리를 누릴 때는 ‘세계2위의 경제대국’임을 강조하고 의무를 나누어 져야 할 때는 ‘국민소득 70위권의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식이다. 예를 들어 중국 중심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면서는 ‘대국의 위상’을 내세우며 압도적인 지분율을 가져갔다. 반면, 기후변화협약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 같은 의무를 정할 때는 ‘후발 공업국’이라는 지위를 내세우며 최소한으로 잡았다.
안보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필리핀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난사 군도와 일본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적용하는 국제법적 근거가 다르고 중국 변경 영토의 역사적 기점도 청조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중국 혁명 이후로 내려오기도 하고 제각각이다.
중국이 한반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치졸한 보복 행위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롯데마트 영업정지나 한국 수출품에 대한 통관 거부를 ‘소방법’ ‘통관법’에 따른 적법 행위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필요할 때만 꺼내드는 원칙은 변형된 ‘원자바오 계산법’일 뿐이다. 중국이 진정한 대국,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이 원자바오 계산법을 버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