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분석기관 필요하다
김형중 고려대 사어버국방학과 교수
가상화폐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성장하며 치고 올라왔다. 8월 24일 코스피 유가증권 거래 총액이 4조7000억 원 수준인데 국내 거래소에서의 코인거래 총액은 5조5000억 원을 넘었따. 8월 19일 코스피 총액이 2조4000억 원이었는데 빗썸의 1일 거래 총액이 2조 6000억원이었다.
이미 코인은 이 사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코인이 화폐인지 상품인지 자산인지에 대해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일부에서는 비트코인이 가치의 저장수단, 교환의 매개수단, 회계의 단위로서 화폐의 기능을 충족한다고 주장한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상위 500대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세 곳만 비트코인을 받는다. 그것도 작년에는 다섯 곳이었다.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 이유는 코인 가격이 자꾸 오르다 보니 자산으로서 보유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500만원을 넘으면서 트랜잭션 수수료도 만만치 않게 올랐다. 그래서 거래 건수는 줄었는데 거래 금액이 늘어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보기도 어렵단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상화폐는 열탕속에서 펄펄 끊고 있다. 그래픽카드 수요가 4월에 비해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채굴기가 대량으로 설치되고 있다. 농공단지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도심의 빌딩을 채굴장으로 쓰는 곳도 많다. 전기료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라는 의미다. 묻지마 투기가 횡행하는 배경에는 정확한 정보의 부재가 큰 몫을 한다. 세계적인 다단계 사례로 널리 알려진 어느 코인 모임이 지금도 SNS에서 사기가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다. 어쩌다 저렴한 코인을 사서 1년도 안돼 수백배 이익을 남긴 투자자들이 새로운 코인을 물색하고 있다. 분별할 능력이 되지 않는 투자자들이다. 그런데 막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공신력 있는 민간 기구는 없다. 이런 환경에서 사기의 온상이 생겨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실을 잘 모르는 다단계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엉뚱한 코인을 사고 나서 눈물 흘리는 투자자도 많다. 되지않을 코인 사업에 ‘몰빵’하는 슬픈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형 사고가 터진 후 “그들의 무지와 탐욕을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바람직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투자는 운에 맡긴다지만 그래도 투자대상이 신뢰할 수 있는 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코인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발권한 지폐처럼 보증기관이 있어 믿고 쓰면 되는 게 아니다. 분산환경에서 합의 프로토콜에 의해 신뢰를 확보한다는 데 일반인들이 그걸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프로토콜 명칭이 고스트라고도 하고 캐스퍼라고도 하는 데 그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는 사람도 드물다.
채굴하는 코인도 있고 채굴하지 않는 코인도 있다. 그 차이도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 코인 프리세일을 한다는데 믿을 것이라고는 백서뿐이다. 그런데 그 백서조차도 문자열은 평문인데 전문용어 투성이의 사실상 암호문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 백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가 극소수다.
주식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시제도가 운영되고 기업분석 사이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비슷하게 가상화폐 분석기관이 필요하다. 이런 기관에서 프리세일하는 코인의 백서를 분석하고 공개한 오픈소스를 점검해서 신뢰성을 검증한 후 평가보고서를 제공하면 투자자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 코인 설계가 붐을 이루다 보니 설계나 구현능력을 지닌 엔지니어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그런데 준비된 엔지니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코인 엔지니어들에게 설계나 분석 기법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구현된 시스템을 평가해줄 기관도 필요하다. 성능, 보안, 사용성 등 평가항목도 적지 않다.
이런 민간기구를 통해 코인산업이 안착하고 사용자나 투자자들이 보호를 받게 된다. 그래야 코인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화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가맹정점이 늘어나며 연관된 핀테크 산업이 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