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보다 더 무서운 놈 온다 : 한국경제 한현실 칼럼 (2017년 9월 8일 금요일)

사드 보복도다 더 무서운 놈 온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요동치는 글로벌 가치사슬(GVC) 플랫폼 장악 노린 미·중 AI전쟁
손놓은 정부, 출구막힌 한국기업”

“전기차 배터리 등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사드 보복으로 고전한다.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가능한가.”(패널)
“그건 미국도 쉽지 않다.”(게리 제레피 미국 듀크대 교수)
산업연구원과 미 듀크대 GVC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변화와 한국의 산업혁신’ 콘퍼런스에서 오간 얘기다. 제레피 교수는 중국을 피해가는 건 해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중국이 GVC의 위쪽, 즉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향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라고 충고한다.
글로벌 분업 자체는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GVC 측면에서 생산의 전체 과정을 보면 단순한 분업이 아니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 애플 아이폰이 그런 사례다. 미국은 기획·디자인, 아프리카는 금속, 한국·일본·독일은 부품, 중국은 조립, 그리고 다시 미국이 판매를 맡는 식이다. 미국이 부가가치가 제일 높은 양 끝단을 손에 쥐고 중간 부분은 대체가능 상황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통제하는, 이른바 ‘스마일커브’ 구조다. 선진국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GVC다.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중국 제조 2025’는 제조업 GVC의 상단을 치고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스마트 팩토리, 제조업 서비스화 등을 가속화 시키는 4차 산업혁명을 ‘기회의 창’으로 여겼을 게 분명하다.
더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 건 중국이 인공지능(AI)에서 플랫폼 기업 키우기에 나선 점이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 AI 플랫폼을 앞세운 미국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달라질 GVC의 승자를 노린다는 걸 읽었다는 얘기다.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중국의 AI전략이 그 증거다.
중국은 AI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을까.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답을 내놨다. “중국이 축적한 막대한 빅데이터, 사실상 규제로 작용하지 않는 개인정보보호제도, 윤리논쟁에서 자유로운 바이오 헬스, 글로벌 차원의 투자·인재 확보 등 미국과 경쟁할 기반을 확보했다”고.
중국의 이런 움직임만 봐도 4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분업구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경제의 방향성이다. 한국은 1960년대 때마침 다가온 글로벌 분업구도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 넘기던 노동집약형 산업을 잡아 성장 가도를 달렸다. 반도체 등 지금의 주력산업들도 글로벌 분업구도 변화를 기회로 포착한 결과물이다. 그런 한국 경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외치고 문재인 정부가 꽃피우겠다는 4차 산업혁명만 해도 그렇다. 말만 무성할 뿐 전략이 없다. 한국 경제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지 암담할 정도다.
가야 할 길이 안보여서 그런다면 또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인더스트리 4.0’ 등이 다 같다고 말하는 제레피 교수 눈에도 갈 길이 보인다는 한국 경제다. “제조업도, 서비스업도 4차 산업혁명 버젼에 맞게 업그레이딩하라”, “한국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정의하고 가치사슬을 창출해 보라”는 주문은 국내 전문가도 숱하게 해 왔다. 그가 제시한 방법론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혁신’ ‘인적자본’ ‘규제혁파’등이다.
미국 경제성장에서 기술진보의 역할, 또 그게 노동과 자본에 돌아갈 파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밝힌 바 있는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나, ‘신성장론’을 들고 나온 폴 로머와도 일치하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맘만 먹으면 못 할 이유가 없다. 낡은 이념만 벗어던지면 말이다. 경제학의 전통적 생산함수 해석이 설명력을 잃은 지는 오래다. 노동과 자본이란 이분법적 논리로 ‘친노동’을 외치며 ‘소득주도성장’으로 가자고 하지만, 한국이 글로벌 분업구도에서 밀려나면 다 헛일이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대가가 무엇일지, 그게 사드 보복보다 백배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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