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체에 냉장고 규제가 웬말
오찬종 모바일부
지난 26일 문재인정부 혁신 성장을 이끌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각 출범’ 우려와 함께 현판식을 했다. 뒤늦은 출발이지만 정보기술(IT)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장병규 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더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법에 맞는 업종을 찾지 못해 낭패를 보는 스타트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업자 자격을 위해 기존 유사업으로 등록할 수밖에 없는게 문제의 시작이다. 엉뚱한 옷을 입으니 엉뚱한 규제로 발목 잡히기 일쑤다.
미트박스라는 스타트업은 온라인 축산물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었다. 축산업자와 정육점을 직접 연결해줘 유통 과정을 혁신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형 정육점용 냉장고는 스타트업들의 고달픈 현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축산유통전문업종 자격을 따르면 냉장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이 억지로 냉장고를 사게 만들었다. 고기 한 점 들어올 필요가 없는 IT회사 아이템이 단지 육류라는 이유 때문에 펼쳐진 기괴한 풍경이다. 정부가 개선책을 마련 중이지만 바뀌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한다.
비단 미트박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먹구구식 음식 배달 시장을 혁신해 배달대행업을 만든 매쉬코리아, 바로고 등은 여객운송법에 등록할 수 없어 퀵서비스업으로 등록하는 임시방편을 취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동네 운행기반임에도 원거리·큰 도로 기준으로 높은 보헙료률을 적용받는다. 8퍼센트, 렌딧 같은 개인 간 대출(P2P) 업체들도 엉뚱한 사업으로 등록했다.
이들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을 연결해준다. 고금리를 강요하는 대부업자들 횡포를 중금리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P2P는 업종이 따로 지정돼 있지 않아 역설적으로 정작 본인들이 대부업자로 사업자 등록을 해야 했다. 회사가 직접 대출해주는 게 아니라고 설명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슬로건이 생각난다. 국가로서 꼭 해야 할 기능을 알맞게 수행하겠다는 취지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엉뚱한 사업에 등록할 필요가 없도록 그들에게 꼭 맞는 옷을 입혀주자. ‘스타트업을 스타트업답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