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다치바나 다카시 저/이언숙 역, 바다출판사) 은 자기 역사(자서전)를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진행한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수강생의 사례가 많이 소개됩니다. 소개한 글은 이케다 치카고 씨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 대목이 좋다고 저자가 이야기 한 부분 입니다.
책의 맥락은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 입니다.
어떤 민족의 역사라도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민족 구성원이 가진 자기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큰 움직임을 주시한 것만으로는 결코 역사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미시적인 부분에도 눈을 돌려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던 민족의 전 구성원 개개의 생각까지 포함한 자기 역사의 집합체로서 역사를 다룰 때, 비로소 진정한 민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자서전을 통해 역사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것. 자서전의 내용이 진실된 사실이라면 자서전을 쓴 사람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과거를 온전하게 회상할 수 있습니다.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
강기동 저 | 아모르문디 | 2018년 11월 01일
2018년 국내 톱10 기업의 1위와 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니다.(출처: https://bit.ly/2Q7LdGi) 모두 반도체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 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반도체 업계의 세계 1위도 현재는 삼성전자 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반도체 신화를 이야기 할 때 기억해야 될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1973년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림한 강기동 박사입니다. 그는 조립업 중심이던 국내 반도체 산업을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로 전환하였습니다. 훗날 본인이 설립한 이 회사는 삼성전자에 인수됩니다.
이 책은 강기동 박사의 자서전 입니다. 개인에 대한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국내 최고 대학의 실상을 확인하고는 미국 유학을 결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모토롤라 연구소에서 반도체 연구를 담당하고, 미국 극비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담았습니다. 국내에 반도체 제조 기술을 이식하기 위한 노력과 각종 장애물(?)에 대한 내용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희생하고 국내에 반도체 소자 생산 공장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세우기 위해 준비한 과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에서 미국에서의 삶은 성공을 그리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좌절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본인의 회사가 삼성에 인수되면서, 다시 미국으로 간 이후에도 한국 기업의 반도체 산업 진출에 관여를 했다고 합니다. 뒷부분에 삼성 이병철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의 64K DRAM 제조에 대한 ‘기’싸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반도체 기술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pnp, npn 트랜지스터, LSI 등 입니다. 저자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은 미국 기업에서도 반도체 연구소가 처음 설립될 때 입니다. 연구소가 설립되고 당시에는 첨단 기술이었겠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때 처음 익히는 평범한 기술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산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원을 찾는 다면 이 책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강기동 박사, 그리고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준비하고 설립을 함께 한 사람들 일 것입니다. 당시 저자의 실력은 아래 글에서 잠시 엿볼수 있습니다.
공식 보고서가 작성되기도 전에 이 사실이 소문 나 고위 경영진에게 전해졌다. 나는 아무런 보고서도 만들지 않았다. 자연히 연구소의 위상이 올라가고 신뢰가 깊어졌다. 이젠 아무 때나 생산 문제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모든 문제를 말로 의논하고 서로 편하게 의사소통이 되었다. 간단한 실험이나 처방은 말 한마디에 실행으로 옮겨 문제를 해결했다. 속도가 빠른 구멍가게식 경영이었다.156쪽
책에 실린 내용들은 무척 사실적입니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미국 생활 등 읽다 보면 생생하게 그려 집니다. 사진 자료를 통해 사실을 보탭니다. 특히,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로 하고 한국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올 때 벌어지는 일들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기 까지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기업의 부정부폐와 이권 등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고 읽지만 결과는 역시나 입니다. 그 시절 그 정권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과정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지금의 삼성 회장에 대한 부분도 나옵니다. 사실이라면 저자가 이룬 노력의 공이 충분히 억울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국생활 경험을 통한 미국 내에서의 분위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모토롤라 반도체 공장의 경영방식과 더불어 실리콘밸리의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가 반도체의 메카로 발돋움 한 것은 기술 발전 과정을 알거나 직접 체험한 기술자가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가 바로 결재를 하는 체계. 살아남은 회사들은 다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생긴 인텔이 그런 회사였다는 것 입니다.
책을 읽고, 구글에서 ‘강기동’을 검색해봤습니다. 많은 기사가 나옵니다. 그 중 제일 빠른 날짜의 기사-[기획-삼성, 반도체사업 30년] 삼성 반도체 사업 뿌리 `한국반도체공업` 탄생 뒷얘기(https://bit.ly/2FRbXGv)-를 클릭했습니다. 아쉬움과 섭섭함에 20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삶은 고단했다고 합니다. 아프고 힘든 불행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반도체와 상관없는 새로운 기술로 삶을 찾고 생계가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서전을 통해 그 동안의 아쉬움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 같습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한국 교육의 현실과 미래 교육의 방향에 대한 저자의 철학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세대가 생각했던 우리나라의 수준을 볼 수 있으며, 조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시도한 교육의 방향이 지금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만든 이유가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영어 능력이 없는 사람을 미국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나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와서는 다음 주에 시험 친다는 말도 못 알아들어 시험을 망친 일도 있었다. 아무리 이론이고 뭐고 잘 알아도 의사소통이 안 되면 바보 취급받기 마련이다. 226쪽
내가 미국으로 떠나던 1958년에 공과대학 교수님들은 정말로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내용을 아는 친구 이야기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고, 젊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 무서워 늙은이들끼리 짜고 담을 치고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양로원이 바로 내가 졸업한 서울공과대학이라고 했다. 1973년의 이야기다.242쪽
이 자서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썼다고 합니다. 그 동안 세상을 떠도는 많은 오해와 왜곡들을 바로 잡고 싶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설립한 회사가 실제로 열매를 맺고 성공함으로써 반도체 산업을 한국에 정착시켰고,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알아주는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뒤로하고 저자의 원천 기술을 발전시키고 크게 성공시켜 준 삼성반도체와 현대하이닉스라는 대기업에 고맙다는 인사도 합니다.
이제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 그 출발점에 강기동 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