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마주합니다. 일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에 고민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문제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합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이 필요합니다. 또, 수많은 생각들과도 맞서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에도 의심이 필요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적 지식, 그 틀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같지 않다는 것,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서도 잘 못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한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계속적으로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상식적 지식으로 빠지는 경우일 것 입니다. 모든 면에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삶을 사회적으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됩니다.
공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까지의 공감은 좋은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써 공감은 꼭 필요하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공감이 과연 좋은 면만 있을까요? 공감 능력 때문에 비인간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일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감의 두 얼굴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 저/두행숙 역 | 소소의책 | 2019년 06월 20일 | 원제 : DIE DUNKLEN SEITEN DER EMPATHIE
이 책은 공감의 두 얼굴을 부제로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만 강조되던 공감을 부정적인 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감은 정말 좋을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공감이라는 말 뒤에 감춰진 내용들을 풀어냅니다. 사례를 소개하고 논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평소에 알고 있던 지식과 달라서 인지 책을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한페이지를 보는데 읽은 문장 또 읽고, 또 읽고 해야 거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머리에서 거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오래된 연구에서도 공감의 부정적인 면이 많이 언급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사상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있는 철학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부터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공감 문화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으로 확정되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친사회성과 이타주의를 넘어서서 그 현상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우리의 시야에서 잃어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인간, 객관적인 인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수용적인 관찰자는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하는 체험에 의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상실’속에는 자기 확대도 들어 있는 것이다.85쪽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서문에서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사회가 인정한 부분에 반기를 들려고 하면 사실로 정리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해를 조금이나마 빨리 하도록 하는 사전 장치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서문을 통해서 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책 읽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공감 능력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한 개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공감의 부정적인 면, 즉 위험성을 자아 상실, 이원론적 흑백 사고, 동일시하는 관계, 잔인성 및 사디즘, 흡혈귀 행위 등의 주제로 하나하나 근거를 이어갑니다. 많은 사례도 해당 근거를 뒷받침 합니다. 독일 총리 메르켈,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영화배두 조디 포스터 등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나와서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차단 메커니즘이 공감 구조의 일부로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 사용에는 복잡한 개인적인 차이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공감을 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차단의 필연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어서 우리는 공감에서 특별한 관심 대상이 될 수 있는 부차적인 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114쪽
그렇다면 공감, 반드시 해야 할까요? 공감은 좋은 목적을 위해 단순히 도구화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또한 더 많은 공감이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단순히 부연적인 논리도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공감을 너무 많은 희생과 연결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빼놓지 않습니다.
헬리콥터 부모들이 인지하는 것은 특정한 형태로 고정되지 않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감히 추측하건대, 그기서는 공감, 그것도 일종의 소망이 담긴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녀가 찬란하게 빛나는 성공과 승리를 거두는 것이고 그들이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중략)
자녀가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생기면 부모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실제로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가장 의례화된 공감의 장면들에 속한다.224쪽
그럼에도 공감은 반드시 습득하고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감을 선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확대된 인지에 있다고 합니다. 공감을 수단 삼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상상적으로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감은 진화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인간의 생존 조건이라고 합니다. 점점 개인화 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공감을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개인과 사회의 존립은 공감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이것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마지막, 후기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는 이 책,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읽으면서도 계속 어렵다는 핑계로 거부를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공감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마무리를 보기 위해 끝까지 읽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세번은 다시 더 읽어야 이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