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축구에서 프로축구로 가는 길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한양대 특임교수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다. 필자는 최근 8명의 재직기간을 계산해 보았다. 미군 대장은 평균 33개월 동안 재직했고, 한국군 대장은 평균 16개월 재직했다. 최근 육군참모총장 8명의 재직기간도 계산해 보았다. 평균 14개월이었다. 자신의 조국을 떠나 머나먼 한국 땅에서 미군 장성이 평균 33개월 근무하는데, 한국군 장성은 절반 수준인 14~16개월 정도 재직한다.
국방부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 중앙부처 실국장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13개월이고, 과장급은 평균 14개월이다. 어떤 기관의 최고 책임자 혹은 주요 보직자 재직기간이 13~14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일 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라면 누구라도 혁신다운 혁신, 구조를 바꾸는 혁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은 기획, 집행, 평가 과정을 거치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으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렵고, 공무원들도 일할 맛이나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공직자들의 임기가 이렇게 짧은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된 ‘순환보직제도’때문이다. 이 제도는 공직자의 부패와 유착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는데, 이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가진 공통의 고민이다. 선진국들은 세밀한 통제시스템으로 부패와 유착을 차단 중인데, 우리나라는 기형적인 짧은 재직기간으로 막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유능해도 열정을 발휘하기 힘들고, 전문성을 키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나아가 국가 혁신도 요원하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저서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문성 없는 공무원 순환보직 동네축구팀 연상하게 만들어
창조적 리더와 전문가 키워야 적폐 청산·백년대계 수립 가능

“공무원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나는 이 순환보직을 접할 때면 한 번씩 돌아가며 센터포워드를 해 보는 동네축구가 자연스레 연상되곤 했다. 포지션별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소화하는 전문화된 프로축구팀과 센터포워드, 풀백, 골키퍼를 서로 돌아가며 해 보는 동네축구팀이 맞붙었을 때의 결과는 자명하다.”
2011년 국가기록원은 ‘2016년 세계기록총회’를 유치하고 ‘국제기구(ICA)’와 MOU를 체결한다. 5조에는 “한국 측은 2016년 총회가 끝날 때가지 행사관련자를 바꾸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왜일까? ICA는 10년 이상 담당자가 바뀌지 않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행사 준비 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 정부는 공직자의 필수 보직기간을 늘렸다. 과장급 미만 공무원은 2년에서 3년으로, 고위공무원의 필수보직기간은 1년에서 2년으로 길어졌다. 비상식적인 보직순환 사이클을 조금 늦추긴 했으나, 전문성 부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떻게 하면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공무원 인사제도는 직급별 T/O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 부서에서 일을 잘해 승진히면,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승진한 직급에 맞는 다른 보직으로 이동해 낯선 일을 맡아야 한다. 직급과 직책이 분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직된 직급별 T/O제는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고 전문가 양성을 어렵게 하기에 민간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다.
새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정책들이 많다. 예컨대 ‘문제인케어’는 국민의 의료보장을 획기적으로 높여 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의료비 증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의료비 지출만 수십년 관리해 본 의료비 전문가가 필요하다. 또 국방, 외교, 교육, 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백년 대계를 세우고 싶다면 두 가지 인재들을 키우고 등용하는 데 인사전략을 집중해야 한다. 한 그룹은 창조성으로 무장한 핵심리더 그룹이고, 또 한 그룹은 혁신전문가, 인사전문가, 조세전문가, 에너지전문가, 벤처전문가, 미래전문가 등 전문가 그룹이다. 이제 동네축구에서 프로축구로 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