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보면 어째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몇년 전입니다. 앞으로 머신러닝이 대세가 된다고 하여 책을 펼쳤는데, 수식이 너무 많은 것 입니다. 수식은 건너띄고 그냥 술술 읽었습니다. 아래 글을 보는 순간 그 때 생각이 나면서 내 얘기구나 하였습니다.
인공지능 관련 전문서를 볼 때, 원리를 설명하는 수식이 나오면 눈앞이 캄캄하다.(나도 모르게 건너뛴다.)
이제는 머신러닝, 인공지능이 민주화,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Google, MS, AWS는 앞다퉈 사용하기 쉬운 플랫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필요한 것을 그냥 가져다 사용하면 된다는 말에 혹 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다 또 내 얘기를 하는 글을 봤습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을 할 때, 기존 알고리즘이나 라이브러리를 블랙박스처럼 그대로 가져다 쓴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빨리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도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빨리 가더라도 되돌아 오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도 아마 이때 일 것입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저 | 인플루엔셜 | 2018년 08월 03일
수학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수학은 논리적인 풀이 과정이라는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어 더 답을 하기 힘듭니다. 수학이 논리학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첫째, ‘수학은 논리학만은 아니다’ 둘째, ‘수학만이 논리를 사용하는 학문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키디피아에 기록된 수학의 정의도 꺼내 이야기 합니다. 그 정의도 완벽하지 않다고 합니다. 결론은 수학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에 대한 답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39쪽
이 책은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질문에 답을 하면서 책을 썼다고 합니다.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도 점진적으로 깊이를 더해 갑니다. 깊이 있는 질문에 이해하기 쉽도록 답을 하는 형식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질문이 마구 생겨나는 것도 있었습니다.
‘적당한 답의 틀satisfactory framework for finding the answer’.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들은 다 그런 식의 질문들이에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답을 모르죠.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답을 모르는 것’이상으로 더 난해합니다. 답을 모를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즁략)
제 생각에 이런 종류의 문제가 뉴턴의 이론이 전개되면서부터 대두되었던 것 같습니다. 즉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 지는 알지만 답 자체를 모르는 상황과, 답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사상의 틀이 없는 상황. 두 종류의 난해함에 부딪힌 것입니다.79쪽
<월간 윤종신>으로 유명한 가수 윤종신 씨는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이 40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해준 말 때문에 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너도 이제 공부 좀 해야 하지 않니?”라는 말. 이 말을 듣는 순간 데뷔 20년차이지만 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음을 느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학문에서 기본이 중요합니다. 이 기본은 사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준비 단계입니다. 기본을 바탕으로 사고를 깊이 있게 한다는 것은 지식을 지혜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을 지혜로 만들어 가는 사고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념이 정립되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해결점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정확한 프레임워크와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107쪽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칼리지 정교수이자 서울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인 김민형 입니다. 페르마 방정식의 ‘해의 유한성 증명 문제’ 처럼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난제들을 해결하며 세계적 학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 책은 그의 1년여 강의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래의 목적으로 책을 읽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학생 때 수학을 굉장히 싫어했던 분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굳는다는 느낌이 드는 분들, 그래서 학생 때 배웠던 그리고, 싫어했던 수학이 어떤 것이었는가? 재검하면서 생각을 새롭게 하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총 6개의 강의로 되어 있습니다. 특강까지 포함하면 7개 입니다. 1강은 수학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수학은 특정한 종류의 논리나 사고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우주를 이해하는 상식과 같다고 합니다. 2강은 역사를 바꾼 3가지 수학적 발견을 이야기 합니다. 페르마와 데카르트의 좌표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위대한 발견을 살피고 있습니다. 3강은 확률론의 선과 악을 말합니다. 통계학에서 많이 다루는 내용으로 윤리를 강조합니다. 4강은 답이 없어도 좋다고 합니다.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포기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조건에서 이해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5강은 4장과 반대되는 개념 같습니다. 답이 있을 때 찾을 수 있는가 입니다. 답이 있다는 것을 수학은 도대체 어떻게 증명하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6강은 위상수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특강으로 숫자 없이 수학을 이해하기를 포함합니다. 숫자와 수는 다르다고 합니다. 숫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연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읽고 나면 공개키 암호화 방식의 알고리즘이 떠오릅니다. 책을 마치면서는 수학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라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apporoximation’해가는 과정이란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포기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 과정,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179쪽
고등학교 때 부터 수학에 흥미를 잃어버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두세번은 더 읽어야 그나마 이해가 갈 듯 합니다. 책이 어렵습니다. 쉽게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다만 수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수학이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금, 수학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책 입니다.
책을 펴내는 편집부도 이 책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닌 것에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