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집값 트라우마’
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또 나왔다. 초강력 대책이란다. 묵과·좌시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선언했다. 정부 여당이 2일 ‘2차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6·19 집값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보름 만이다. 주택시장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는데도 과거 ‘캐비닛 대책’을 먼지도 안 털고 쏟아내고 있다.
8·2 대책은 ‘투기와의 전쟁’이 콘셉트다. 다주택자와 일부 투자자를 집값 급등 주범으로 규정하고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지정, 다주택자 과세 강화 등 고강도 규제를 선제적으로 가동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과 세종시 일대 집값을 단숨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이들 지역을 방치했다가는 시장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는 12차례에 거쳐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대책을 풀어냈다. 결국 ‘투기 내성’만 키우고 ‘약발’이 없었다는 학습 효과를 토대로 ‘초강도 4종 규제 세트(청약·거래·금융·세금)’를 한 번에 맹폭해서 효과를 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허망한 ‘집값과의 전쟁’
8·2 대책 효과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당장의 집값 잡기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약발이 지나쳐 급랭 상태가 우려될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급랭 상태는 과열 못지않게 시장 불안을 야기한다. 부동산 산업 침체는 연계 산업 불황 심화를 부르고, 정부는 다시 규제 완화·활성화 대책을 내놓게 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반복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공식이다. 정부·언론·수요자들은 어느새 이런 ‘한국형 부동산 대책 공식’에 글들여져 있다. 이 때문에 집값이 조금만 등락해도, 그것이 국지적이건 전체적이건 상관엇이 ‘만능 대책’을 내놓으라고 채근한다.
이들 공식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적절했다. 주택 부족이 심각한 탓에 주택이 공공재 성격을 띠었고, 정부가 공급·분배·가격안정 등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주택 부족이 해소되면서 과잉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다. 정부가 집값을 시장 논리에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현재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 서울은 97%다. 110%이상을 넘어서면 ‘상시 과잉 단계’다. 우리나라는 약간의 주택 부족 단계다. 이것은 오히려 부동산시장의 활성화의 ‘자체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선진화된 부동산 대책 시급
최근 국지적 집값 오름세는 이런 상황에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 강남권과 일부 수도권, 세종시 등이 재건축 활성화 등 지역적 호재에 따라 단기 급등세를 보였거나 상승세가 나타났다. 지난 7월 서울 주택 매매가 상승률은 0.63%로, 6월보다 0.08%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수도권은 0.32%에서 0.40%로 올랐다. 전국 평균도 0.17%에서 0.23%로 상승했다. 지방은 -0.05%에서 -0.04%로 감소세였다. 전국적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4종 규제 패키지’로 선제적 공격을 한 것은 상황 오판일 수 있다. 선진국형 주택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앞서는 이유다.
정부는 이제 주택시장을 선순환 구조로 유대해야 한다. 투자를 활성화시켜 주택과 도시 수준이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 활성화에 따른 공정과세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주택, 저가주택, 원룸주택 등을 늘려 가는 ‘공생대책’도 필수다. 아울러 수요자, 언론, 공급자들도 부동산 공정과세를 ‘세금폭탄’ ‘징벌적 과세’ 등의 선정적 프레임으로 방해해서는 안된다. 정부와 시장 주체 모두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