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투자 사이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요즘 사적인 모임의 대화는 대개 가상화폐로 시작해 강남 집값으로 끝난다. “아무개가 가상화폐로 몇 배를 벌었다”는 무용담이 먼저 소개된다. 한동안 부러운 눈빛이 교차된다. 누군가가 “지금 투자해도 될까?”라고 물으면, “된다”, “안 된다”를 놓고 옥신각신한다.
어쩌다 대화가 끊기면 “강남 아파트를 지금 사도 될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역시 “된다”, “안 된다”를 반복하다가 “강남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집에 갈 때가 됐다”며 자리를 파한다. ‘가상화폐는 분명 투기 같은데 신기술이 있다고 하고, 강남 집값은 더 오를 것 같은데 상투 같기도 하고···’라는 혼돈만 더해진 채 길을 나선다.
튤립, 닷컴 다음은 가상화폐?
이런 대화에 단골로 올라오는 것이 거품의 역사와 가격통제의 역사다. 거품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네덜란드 튤립 투기(1960년대)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시시피회사 파동(710년대),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속았다는 영국의 사우스시(South Sea)회사 사건(1720년대), 미국 철도산업 버블(1870년대), 닷컴 버블(2000년대)이 차례로 등장한다. 가상화폐 열풍의 끝도 그럴 것이라는 예단이 깔려 있다.
가격통제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프랑스 혁명기 때 정부가 우윳값을 반으로 내리도록 했다가 타산이 맞지 않은 목축업자들이 젖소를 업애 오히려 올랐다는 이야기, 중국 대약진운동 때 곡식을 해치는 참새를 잡았더니 해충이 기승을 부러 오히려 흉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거론된다. 시장을 감안하지 않은 가격통제정책은 엉뚱한 부작용을 야기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정부의 집값 대책과 최저임금 인상대책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여기서 짚고 갈게 있다. 거품의 역사와 관련해서다. 튤립 투기와 미국 철도 버블, 닷컴 버블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당시엔 신기술이나 신상품이어서 가치를 평가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철도나 닷컴은 그렇다고 쳐도, 튤립이 무슨 신상품이었냐고? 당시엔 그랬다. 우선 증권거래소 자체가 신기술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1602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수십 년 지나면서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까지 거래됐다. 수많은 농산물과 공산품도 거래 대상이 됐다. 튤립은 16세기 유럽에 전파됐다. 아름답지만 단기간에 수를 늘리기 어렵다는 희귀성도 있었다. 1630년대 초반 상장되자 투기 수요가 몰렸고, 선물거래까지 성행했다. 하루에도 두세 배 가격이 오르다가 1637년 2월 거품이 꺼졌다.
거품이 꺼진 뒤 얻은 것이 있었다는 점도 다른 거품 붕괴와는 다르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튤립 거품 붕괴의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매수자와 매도자의 손익을 조정하면서 상장회사 폐지에 대한 노하우를 체득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유럽통합증권거래소인 유로넥스트를 보유한 금융강국이 됐고, 세계 최대의 튤립 재배국이 됐다.
거품 붕괴 후 얻을 것 대비해야
철도 버블과 닷컴 버블은 말할 것도 없다. 후유증이 작지 않았지만, 미국은 세계 최대 철도망을 깔아 성장의 기틀을 닦았다. 닷컴 버블이 심했던 미국과 한국은 정보기술(IT)강국이 됐다. 그저 신기루만 쫓다가 엄청난 후유증만 남긴 미시시피회사 파동이나 사우스시 회사 사건과는 다르다.
가상화폐 열풍은 어떻게 끝날까. 정부가 15일 ‘투기는 잡되 산업은 육성한다’는 원칙을 밝히면서도 대책은 2-3주 후에 내놓기로 한 것을 보면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게 틀림없다. 오늘도 사적 모임에 나가기 위해 가상화폐에 대해 얘기할 거리를 만들어야 겠다.